본문 바로가기
테마 지리/아시아

오랜 전쟁의 땅, 캄보디아

by honey-lucy 2022. 8. 7.
반응형

 

 

앙코르 제국의 나라에서 지뢰의 나라가 되기까지 캄보디아 수난의 역사

인도차이나반도의 남서부에 자리한 캄보디아는 9세기~15세기에 걸쳐 번영한 앙코르 제국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나라입니다. 앙코르 제국은 12세기의 전성기를 이루어 지금의 베트남, 라오스, 타이까지 세력을 떨친 제국이었습니다.


캄보디아의 공식 이름은 캄보디아 왕국입니다. 라오스, 베트남, 타이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국토의 대부분이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평원지대입니다.


캄보디아는 5월 중순부터 10월 초 사이에는 거의 매일 비가 내리는 우기입니다. 10월 중순부터 5월 초 사이에는 건기로 비가 오지 않습니다.


동남아시아의 젖줄인 메콩강이 캄보디아를 가로질러 남쪽으로 흐르다가 베트남을 지나 남중국해로 흘러들고 있습니다. 메콩강 하류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주 생활 무대입니다. 산업은 주로 농업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인구의 80%가 쌀농사를 짓는데, 메콩강과 톤레사프호 주변의 넓은 평야에서 많이 짓습니다. 벼농사 외에 옥수수, 콩, 고무나무, 목화, 야자, 잎담배 등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지하자원은 매우 적어 철광석만 조금 생산됩니다.


캄보디아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캄보디아 공산당 군대 정권을 이전인 1975년까지 불교국가였습니다. 그래서 국민의 90%가 불교 신자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 유적인 앙코르와트 사원은 아주 유명합니다. 프놈펜의 왕립 발레단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발레단은 주로 고대 불교와 힌두교 전설을 발레로 공연합니다.


캄보디아는 베트남, 타이 등 주변 국가의 침략을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1863년 이후 90여 년 동안은 프랑스의 식민지였습니다. 이 시기에 나라 이름을 '캄푸치아'에서 '캄보디아'로 바꾸었습니다. 1954년 독립했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 세력과 민주주의 세력이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면서 사회 혼란이 계속되었습니다. 1970년대 중반 폴 포트가 이끄는 공산당이 정권을 잡았습니다. 캄보디아 공산당 군대가 지배하던 1970년대는 캄보디아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기입니다. 공산당 정권의 잔인한 대학살로 인해 캄보디아 사람들이 엄청나게 희생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이들은 교육받은 중산층 사람들과 자신들이 적으로 여긴 사람들을 100만 명도 넘게 학살했습니다. 당시 희생자들의 무덤에 있는 킬링 필드에는 아직도 많은 유골이 남아 있습니다. 킬링필드(Killing Field)는 '죽음의 뜰'이라는 뜻으로, 캄보디아 공산당 정권 때 공산당 군대에 의해 수천 명이 학살되어 매장된 곳입니다.


1979년 베트남 군대가 쳐들어와 크메르루주 정권을 몰아냈습니다. 캄보디아는 이후에도 내전이 계속되다가 1993년 마침내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내전이 끝나고 새 왕국이 세워졌습니다. 1993년 국제연합(UN)의 감독하에 총선거가 실시되었으며, 시아누크를 초대 국왕으로 하는 입헌군주제의 캄보디아 왕국이 세워진 것입니다.


그 뒤로는 어려운 경제를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이어진 전쟁과 학살로 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캄보디아 국민의 3분의 1이 15세가 안 된 어린이들입니다.


또한 30여년간 계속된 내전으로 인해 세계에서 지뢰가 가장 많이 묻혀 있는 나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해마다 지뢰로 인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농경지의 30%를 경작하지 못하게 되어 몹시 큰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1990년 이후 지뢰 제거 작업이 계속되고 있으나 캄보디아 전역의 지뢰를 제거하는 데는 100년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합니다.

 

 

 

신비로운 비밀의 사원, 앙코르와트

세워진 지는 800년이 넘은 앙코르와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 건축물입니다. 앙코르 제국이 번영을 누리던 9세기~15세기에 앙코르 제국의 수도였던 앙코르 시에는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사원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특히 앙코르 왕국의 중심 도시였던 앙코르에 있는 웅장한 사원인 앙코르와트는 앙코르 건축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원의 벽은 힌두교 신들을 새긴 조각으로 가득합니다. 고대 앙코르 역사를 보여주는 그림도 새겨져 있습니다. 앙코르 제국의 왕인 수리야바르만 2세는 힌두교 신들에게 바칠 신전으로 앙코르와트를 짓게 했습니다. 앙코르와트는 단순한 사원이 아니라 수리야바르만 2세가 나라를 다스리는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앙코르와트 사원이 지어진 지 20년 뒤, 이웃 나라 타이에서 쳐들어와 앙코르를 점령하고 약탈했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국왕이던 자야바르만 7세는 힌두교 신들이 자신을 지켜주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뒤 그는 불교를 믿었고 앙코르와트 근처에 앙코르 톰이라는 새로운 수도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앙코르와트는 버려진 채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울창한 숲으로 덮이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가면 신의 노여움을 사서 죽게 된다는 전설 때문에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1858년 프랑스의 탐험가 앙리 무어가 메콩강을 여행하다가 앙코르와트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앙리 무어는 다음 해에 열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가 신의 저주를 받아 죽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앙코르와트의 수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70년대 일어난 베트남과의 전쟁으로 또다시 앙코르와트는 많은 유물이 파괴되고 약탈당하였습니다. 1992년 유네스코는 앙코르와트와 앙코르 시에 흩어져 있는 유적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고, 이후에는 복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유네스코가 앙코르와트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는 것은 이곳이 세계 문화적 측면에서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세계문화유산이 되면 여러 나라가 협력해서 문화 · 자연적 보물을 보호합니다.
반응형

댓글